
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이 될 때, 참다운 가치를 지닌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다(고전 12;27). 성령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로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현대인들은 온갖 상처와 아픔이 있는 시대를 살아가며 저마다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의 목회 상담 사역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의 목회 상담 사역이 성경적인가?”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는가?” 질문하게 된다.
심리학적 인간 이해의 한계
상담자가 인간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하는 인간관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담자가 피상담자를 어떤 존재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상담의 방법과 내용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한 심리치료법들은 나름대로 인간 이해를 가지고 있다. 심리치료에서 전제하는 인간관은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고전적인 정신분석학에서 보는 인간 이해의 핵심은 결정론적인 인간관이다. 인간의 행동은 정신에너지와 초기 유아 시절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Sigmund Freud)에게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공격성과 성적인 충동과 관련이 있는 본능이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으로 보면, 그의 인간 이해는 인간의 한 단면만을 바라본 부분적이고 왜곡된 인간 이해라 평가할 수 있다. 성경적 인간관에서 인간은 과거에 의해 결정된 존재가 아니며 본능에 의해서 지배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창의적으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으며, 본능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마음의 법인 양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둘째, 행동주의 요법에서는 인간을 단순하게 기계적인 반응을 하는 존재로 본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인간에게 자아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경험의 집합체로 본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은 단순하게 자극에 대한 반응의 결과다. 행동의 변화는 칭찬에 의해서 강화되고 처벌에 의해서 감소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행동주의자들은 인간을 너무 단순화시켰다. 그들은 인간의 감정, 사고, 의지, 경험들을 제외시켰는데, 인간의 내면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환경이 인간에게 부분적으로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바뀔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시 8:4-9). 특히, 성경은 인간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구원자가 필요한 것인데, 행동주의 인간 이해는 죄의 책임성을 부인하게 되므로 구원자의 필요성이 없게 되어 성경적인 인간관과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인본주의 심리치료다. 칼 로저스(Carl Rogers)로 대표되는 인본주의 심리치료의 특징은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로저스는 인간은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부단히 움직이는 존재로 본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으로 볼 때, 인간은 자신의 종국에 대한 궁극적인 힘과 유일한 주인이라고 가정하는 인간관은 왜곡되었다. 이것은 성경적인 세계관과 충돌한다. 성경은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가 되시고 그분의 주권에 따라 세계의 역사와 인생이 진행된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소망을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없고 피조물에 불과하며 성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성경적 목회 상담 사역과 상담 신학의 필요성
전술한 바와 같이, 심리 치료적인 인간 이해에는 성경적 세계관과 충돌하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이와 같은 비성경적인 심리치료 이론들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성경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성경과 충돌하는 심리치료 이론들을 정제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원론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경적인 목회 상담의 신학이 절실히 요청된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상담 신학의 주요한 성경적 근거를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17절)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18절).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19절)을 부탁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화목케 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신”(20절)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가르쳐준다. ‘사신’은 곧 ‘대사’이다. 사신은 자기 말을 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보내주신 자의 메시지를 대언하는 자이다. 사신은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주신 자의 방법을 따르는 자이다. 사신은 자신의 성품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주신 자의 성품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방법, 그리고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교회를 위한 목회 상담 사역의 과제
성경적 목회 상담 사역의 중요한 역할은 교회를 위한 과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목회 상담사역은 하나님이 돌보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돌본다는 특수성이 있는데, 이것은 주님이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수행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두 가지 차원에서 사역을 수행한다. 첫째,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둘째,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성경적 목회 상담 사역은 교회를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 신학이 교회를 위한 신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목회 상담 사역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사역이 되어야 한다. 누가 성경적 목회 상담 사역을 할 수 있는가? 성경적 목회 상담자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성경적 목회 상담 훈련을 받아야 한다. 심방 하며 목회 상담하고, 설교하며 회중을 집단 상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받아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 목회자는 곧 상담자이기 때문이다.



























